무대륙에서 있었던 아마츄어증폭기의 공연을 보았다. 그는 언제나 열정적이였고 웃음이 있었고 감동도 있었다. 군인 시절 빵에서 그의 공연을 본 뒤로 난 그의 팬이 되었다. 몇 장의 씨디로 환원할 수 없는 공연과 시간과 추억들이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의 가장 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앨범의 가장 뒤에는 땡스투가 적혀있었는데 우연히도 나는 hidros3라는 이름으로 적혀있었다. 나는 감사함에 눈물이 날 뻔했고 더불어 앞으로는 taekjoo라는 보다 이름에 가까운 이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facebook은 실제의 이름과 실제의 친구들로! 라는 모토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이메일이라는 것을 처음 만든 17살이 지난 지 11년이 지난 지금에는 점점 나의 이름이라는 정체성이 하나의 실제 이름으로 모아지는 기분이다.
포터블 씨디피를 안쓴지 오래되었으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쉬움과 집에 가면 음반을 들어보겠다는 마음으로 가득찼다. CDR에 녹음된 내 방의 CDP에선 읽지 못했고 차선책으로 노트북에 CDR을 넣지만
나의 맥북은 그 CDR이, 음반이 “깨끗한 공씨디”라고 이야기 해주며 toast를 띄어주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59번째 수성랜드는 공씨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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