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Vivian Girls – Share the Joy (LP) 1 – C. Spencer Yeh – In the Blink of an Eye (7″) 1 – Toro Y Moi | Cloud Nothings – Split (7″) 1 – Okkyung Lee – I Saw The Ghost Of An Unknown Soul And It Said (LP) 1 – Panda Bear – Tomboy (LP) 1 – Sonic Youth – The Destroyed Room: B-Sides and Rarities (2xLP) 1 – Wye Oak – Civilian (LP) 1 – Battles – Battles Crew Neck Shirt (L) 2 – Fleet Foxes – Helplessness Blues (2xLP) 1 – Toro y Moi – Underneath the Pine (LP) 1 – Dirty Beaches – Badlands (LP)
'음악' 카테고리의 보관물
일기는 블로그에.
어머니가 빨간색 스웨이드를 빨라고 하신다. 신발이야 지저분해도 그냥 신어서 안빤다고 했더니
어머니 왈, “미국 다녀 오더니 애가 그지꼴로 놀려고 하냐.”
옷 많이 빨고 싶지 않은걸…
비가 온다. 어지간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큰 맘 먹고 산 유니클로 우산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거니와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비가 온다. 날은 우중충 하지만
3월이니 봄이 오리라 믿는다.
글 쓰는 것이 어려워진다.
특히나 음악에 대해서 글을 쓸 때 어떠한 사실을 늘어놓고 싶지 않다. 예를 들면 오늘 학교 오면서 들은 도도스가 어디 출신이고 몇 장의 음반을 내놨으며, 이런 종류의 글들은 내가 쓰지 않아도 웹에 수 만 장 널려 있을 것이다. 찾는 것도 쉽다. 구글에 검색어만 넣으면 된다.
그런 사실을 피해가면서 글을 쓰는데 있어서 재료가 되는 것은 주관적인 감상과 기억이겠지만, 나는 나의 감상보다는 만든 사람의 의도를 더 따라가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만든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모르는 이상, 어설프게 곡에 대해서 해석하거나 분석할 수 없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 아는 체 하는 순간, 순진함은 백치로, 용서가 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럼 남는 재료는 추억인데, 이것도 내가 살아온 시간과 경험의 한계가 있는지라 했던 말 계속 써먹는 경향이 있다.
당분간 음악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계속 누릉지 밑바닥 긁는 느낌이다. 이제는 긁어도 나오지 않는다.
—활동 계획——-
일주일, 판 한 장!
일주일에 ‘무조건’ 만원 아껴서
주말에 회원들과 같이 회현 지하 상가에 가서
LP판을 오직 ‘한 장’(두 장 안됩니다, 더블 엘피는 봐줌)을 산다.
그 LP판에 대한 글(메모, 리스트)을 쓴다.
—————–
음악을 사랑하고 엠피3를 사랑하지만
바이널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ghstflws-at-gmail.com
으로 메일 주거나 답글 달아주세요.
강약강약 음악 감상회 2009년 11월10일 정택주
늦은 밤, 도서관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본다. 창 밖으로 천둥이 친다. 한 줄로 모든 것을 요약하고 곡 순서를 늘어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02년 학교에 들어와 지겹게도 한 음악 감상회지만 아직도 글을 쓰는 것은 어 렵고 평소의 생각은 파편으로 존재하여 그 사이의 연관성을 체계화시키는 것은 더 어렵다. 잠을 자다가 일어 난 커플은 도서관에서 키스한다. 3시는 아직 멀었고 몸은 무거워진다. 2002년부터 7년 동안 내가 무슨 음악을 틀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한 달에 CD 사는데 10만 원 넘게 쓰던 시절은 지나갔고 온종일 소울식을 뒤지며 음 반을 다운 받던 시절도 지나갔다. 나의 취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친구는 미국으로 갔다. 또 다른 친구는 내가 알려준 음악을 들으면서 그곳에서의 추억을 만들어 간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아워타운에 300 개에 가까운 글을 썼지만 아무런 피드백과 참여없음에 지친 지 오래다. 창을 통해 바람이 불어 들어왔고 조금은 신선한 기 분이 들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이다. 군에 가기 전 음악을 못 들으면 죽을 것 같았지만, 음악 없이도 나의 삶은 계속되었다. 음악 대신 영어 듣기를 들었고 카뮈의 오디오북을 듣기도 했 다. 창 밖에선 여전히 천둥이 번쩍거린다. 아마도 나의 글은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 못할 것 같다. 한동안 공학 적인 정의를 바탕으로 음악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했지만 내가 사용한 단어는 푸리에 트랜스폼과 바이너리와 같은 별 특색 없는 단어들 뿐이었다. 두산 메거진 대신 두산 중공업에 취업 원서를 썼고 돌아오는 건 좌절뿐이 었다. 내가 글로 밥을 벌어 먹고산다는 것은 일종의 반칙 같았다. 이건 순전히 취미의 영역에서 존재했기 때문 이다. 잘난 체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알아갈수록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아는 것 밖의 더 큰 세계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할 말은 누군가가 다 했다. 내가 할 일은 그 말 을 이해하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게으름은 언제나 나의 의욕보다 컸고 눈은 감아도 시 간은 흘러갔기 때문에 나의 세포들은 나이라는 병에 지쳐갔다. 나의 대학 생활을 지배하는 동아리에서의 기억 은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도움이 전혀 안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을 후회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짜라에서 즐거웠고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것은 유일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2진수의 숫자들은 복호 되었고 아날로그를 통해서 생명을 얻었지만 그로 인해 우리 누구도 진실한 2진수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다. 오래전 나는 디지털과 필름의 처리과정에 대해서 예술학과를 나와 큐레이터를 하는 학식 높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 는데 소스가 어떻게 생성되었든 간에 화면에 전사되는 이미지는 디지털이라는 것을 그분은 인식하고 있지 못 한 듯했다. 그 집에는 검은 고양이가 살고 있었고 늦은 밤, 나와 나의 친구는 그 사람의 빈방에서 잠을 잤다. 여 전히 나는 모든 나의 마음을 한 줄로 요약하고 싶다. 회현 지하상가에 가 레코드를 사고 싶고 지난 1900년 초, 중반의 음악을 찾아 듣고 싶다. 선배는 아직 회현지하상가에는 살 만한 클래식 레코드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 움은, 어딘가에 존재했다. 기억은 연속적이고 거기에 적절한 조작까지 일어났다. 음악을 들으면 그 그리움이 조작되어 전경에 나타났다. 다시 백그라운드로 숨어들었다가 슬며시 내 감정의 전선에 멜로디를 들어냈다. 나 는 흥얼거리면서 길을 걸었고 몇몇은 나의 걸음걸이를 흉내 냈고 내가 계단 올라가는 것을 따라 했다. 나는 여 전히 치킨 4마리를 먹은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고, 같이 치킨을 먹었던 사람은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서, 과자 쪼가리와 음료수를 사 들고 동아리 방에 찾아왔다. 오사카의 건물 사이에서, 다다미 방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 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의 창법은 기괴했지만 기괴함을 넘는 슬픔과 분노를 그의 눈에서 볼 수 있었다. 레 코드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을 수 십 번의 주저와 수 십 번의 연습 끝에 물어볼 수 있었고 그때 나를 바라보던 고양이는 손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녀가 생일에 내게 선물 해줬던 고양이의 무늬를 떠올린다. 상투적인 기 억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생각은 연속적이지만 그 디멘전은 시간에 대해 랜덤했다. 나는 어쨌든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앞을 보고 가기 보다 뒤를 돌아보았다. 오늘의 음악감상회는 상투적인 감상회가 될 것이다. 나 는 계속해서 뒤돌아보고 있고 내가 뒤돌아보는 그 시간에는 오늘 틀 음악과 여기 모인 사람 또한 함께 있을 것 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늦은 밤, 술을 마시고 친구와 센트럴 파크를 거닐었다.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은 공원은 낮의 떠들썩함이 빠지 고 그 자리를 습습한 불길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무서움에 친구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순찰차에 안도하며 결 국 돌아 처음 들어갔던 길로 나왔다. 찰스 아이브스는 유럽의 작곡가에게 그들의 전통 때문에 새로운 시도에 제약이 많아서 불편하겠다고 했다. 그는 낮에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작곡했다. 군악대 출신의 아버지 는 그에게 조성과 상관없이 노래 부를 것을 주문하였다.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 음렬 주의는 독일 음악이 과거 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였다. 그는 무조에 음렬이라는 새로운 법칙을 부여했고 그것을 통해 음악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브스는 전통이라는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랬기 에 그는 과거와 상관없이 현재를 대변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무조, 자유 리듬, 4분 화성, 비전통적인 악기 편성, 현대음악은 드뷔시가 아닌 그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과거와의 결별. 마지막으로 걸었던 센트럴 파크는 할로윈을 앞두고 호박으로 가득 차있었다. 꼬마는 칼을 들고 부모와 함께 호박을 파고 있었다. 흑인은 자전거를 타고 손님을 태우려 하고 있었고 어린이들은 무엇이 즐거운지 풀밭을 뛰어다녔다. 공원 안, 가장 큰 길가에선 말똥내가났다.난산책하며몇장의사진을찍었고짧은시간동안잔디에누워있었다.햇살은좋 았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 Krallice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John Zorn은 자신의 음악에 대해 맨하튼에서 5분이면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고 했다. Ives의 음악은 센트럴 파크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았을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Ives의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솔직하게 Jimo의 영향이 컸다. 그는 내게 있어서 새로운 음악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Merzbow의 음악을 듣게 된 것도 교토에서 열린 Jimo vs. Merzbow를 통해서였다. 옥경씨는 항상 내가 John Zorn이 아닌 Jimo의 음악적 스펙트럼에 영향받은 것에 대 해 늘 궁금해했었다. Happy Trails에서 Jimo가 보여준 천진한 축제의 모습은 그와 연결된 Ives의 흔적이다. 조 용한 공원에 흥겨운 악대의 행진이 도착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마루에서 아들과 함께 그의 음악을 듣다가 음 반의 반이 넘어갔을 때 음악이 불편하다며 음악을 끄셨다. 그 불편함이 가리키는 지점은 조화로움의 너머일 것이다. 우리는 조화로운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했고 그러한 것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 형적인 세계는 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과거의 환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 세대의 새 로운 환상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 빌어먹을 뱅충이 들아! 이렇게 힘차고 남성적인 음악을 들으려거든 일어서 서 사나이답게 들어보란 말이야!” Ives는 친구인 칼 러글스 작품의 연주회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그에게 음악 은 주관적 관점의 표현인 동시에 초월적인 계시의 힘을 가졌으며 또한 그것은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것이기도 했다. “예술에 대한 사람마다 직관적이고 전진적인 관심은 희망을 성취하고 또다시 새 희망을 만들어 내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갈 것이다.”
내가 음악을 틀면 사장은 자신과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하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이 음악의 3분을 못 견뎌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카페에 있을 손님을 대신하여 껐을지도 모르겠다. 카페에 앉아서 자신이 문화 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들의 수준은 딱 거기까지 였다. 카페의 아르바이트는 루시드 폴의 음악을 틀었다. 그녀는 내가 듣는 음악이 언제나 복잡하고 정신이 없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곤 했다. 프로그 레시브 락에서 프로그레시브는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거나 기존의 체제를 완벽하게 완성하는데 목표를 두었 다. 그녀는 잡지에 나와서 자신에게 왔던 음악들은 다 뻔한 노래였고 자기는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 중 이라지만 그녀의 음악은 뻔한 속내를 드러내 놓고는 아니라고 우기는 수준이었다. 삼식이는 짐오에게 23장의 앨범에 사인을 받았다. 엄은 그의 솔로 음반만 22장을 가지고 있었다. 파주에서 우리는 수줍게 한 장의 앨범을 그에게 내밀었다. 엄과 나는 2006년 광복절 오사카와 교토에 함께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와 레코드 가게를 돌 아다니다 300엔짜리 규동을 먹었고 밤에는 일본 맥주와 라면을 호텔에서 먹었다. 나는 그때도 배가 나왔고 우
리는 현대 제어시스템으로 완벽하게 수평이 조절되는 관람차에서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멀리 끝없는 오사 카 도시가 보였다. 우리는 대관람차를 타지 않았다. 그가 내게 처음 빌려줬던 5장의 앨범을 떠올렸다. 고스트 의 음반은 그 당시 듣지 않았지만, 데이먼과 나오미와 함께 고스트의 기타리스트 2명이 한국에 왔을 때 샀던 음반은 정말로 좋아했다. 중세 기사 물의 주인공이 사무라이인 느낌이었다. 공연 도중 폭우로 전기가 나갔고 후레쉬를 들고 그들의 얼굴을 비췄고 그들은 증폭되지 않는 전기 기타를 치며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다. 폭우 가 내린 뒤 우리는 거리를 걷다, 처음 생긴 아메리칸 어페럴에 들어가서 팬티를 구경했거나 샀던 것으로 기억 한다.
뮤직 바 빛에 갔었다. 2002년 봄과 여름 사이, 우리는 스스로를 뉴에보 쓰레기라 불렀다. 동아리에 이미 쓰레 기는 존재했었고 그들 중 누구는 달리는 버스를 잡기 위해 달리며 토를 했고 빨간 잠바를 입고 소개팅에 나가 곤 했다. 손가락을 이리저리 가리키며 “쓰레기 뛰어내려!”라고 외쳤고 새로운 쓰레기는 누가 대전에서 벌어온 돈으로 맛있는 불량 식품을 먹으며 R.E.M의 음악을 들었고 Sonic Youth의 음악을 들었다. 나는 술을 마시다 밖으로 나가 지금은 없어진 카센터 담벼락에 토를 했고 아침이면 정비사는 호스를 들고 나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지금은 옷가게와 술집으로 가득 찬 공간은 빛이 없는 무서운 길이었고 뮤직 바 빛은 그 골목에서 유일 하게 빛나는 가게였다. 주인아저씨와 우지노는 친분이 있었고 그 아저씨는 홍대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아르바이트생 여자를 건든다는 소문이 돌았다. 엄이 생일 선물로 사준 Yo la tengo의 Painful 음반을 처음 들었 던 곳이기도 했고 소개팅했던 여자와 처음 갔던 곳이기도 했다. 생일날 친구와 폴라로이드를 찍었고 술을 마 시다 취하면 시디 앞으로 가서 음반을 뽑으며 노래를 신청하였다. 빛은 자리를 옮겼고 빛은 빚으로 말미암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아저씨는 한 음반에서 한 곡을 틀지 않았으며 가게 한 편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다. 주인은 자다 일어나 우리의 주문을 받았고 우리는 맥주를 마셨지만 2002년의 그 흥겨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Ruins의 공연에 가지 않았다. 내 기억에 그들의 공연비는 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Gotan project의 공연 에 가지 않았다. 그들의 음악을 원음 방송을 통해 들었다. Stephen Malkmus의 공연에 가지 않았다. 알레스에 서 일하면서 말크머스가 한국에 와서 처음 간 곳은 개고기 집과 사창가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쓰레기. interpol은 한국에 오고 싶어했지만, 그들이 판 음반 판매량을 보면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라이브 를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들의 음악은 1집이 가장 좋았다. 많은 공연을 보지 못했고 많은 공연에 관심 이 없었고 많은 공연을 후회했다. Mats Gustafsson의 공연은 300석이 모두 매진이 되었다. 창 밖으론 바람이 낙엽을 쓸며 사그락 거리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hidros3은 Mats의 hidros 3번째 시리즈에서 따온 것이지만 그 의 공연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가 공연하는 날, 나는 방에 앉아서 블로그에 글을 썼다. 그의 공연에 가는 대 신에 그의 음악을 들었다. Undercurrents에는 그를 micro improviser라고 쓴 것을 기억하였다. 유주가 찍은 Mats의 사진을 기억하였다. 그 사진이 좋아 한동안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썼었다. 3만 원의 재즈 공연, 뭘 모르 는 연인들이 그의 공연에 갔으리라 추측했다.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하였지만, 연인들의 푸념을 찾을 수 없었 다. 버클리에서 공부한 연주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은 프리 재즈와 같은 틀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인터뷰 에서 여유 넘치는 말투로 말했지만 들려온 이야기로 Mats와 손성제는 영역은 물론이거니와 수준이 다른 연주 자였다고 한다. 버클리에서 공부한 첼리스트는 그가 한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왼손에서 터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왜 오른손이 아닌 왼손이었는지. 당신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당신에게 내민 주먹을 편다. 홀짝, 당신은 홀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내민 것은 짝이다. 새벽 3시 배가 고프다.
Boredoms가 2007년 맨하튼 브릿지 아래에서 개최했던 77 boadrum의 live CD는 7700엔이었다. 2CD에 DVD 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7700엔이라는 금액은 만만치 않았다. 88 boadrum의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나는 Gang Gang Dance의 지휘로 보았지만 그 시간이 아쉽다고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77 boadrum의 음반을 사야 할 이유는 크지 않았으므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날 오전 비가 내렸고 공원은 풀밭 곳곳은 개똥으로 가 득 찼지만, 공연이 끝난 뒤 어느 날 윌리암스버그를 거닐다 Water front에 가곤 하였다. Boredoms는 경배의 대 상이었다. Boredoms에서 vooredoms로 다시 Boredoms로. 어딜 가나 그들의 음반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 내 부와 외부로 이어지는 수 많은 디스코그라피 속에서 나는 그들 하나도 제대로 붙잡을 수 없었지만, 내가 성경 을 제대로 읽진 않았지만, 예수를 아는 것처럼 그들의 그림자를 느낄 수는 있었다. 밴드의 드러머인 요시미는 Mats와 앨범을, Flaming Lips와 음반을 같이했고 Yamtaka Eye는 John Zorn과 함께, Beck과 함께 작업을 하였 다. 시험을 망치고 동방에 들어와 피아졸라의 음악을 들었고 시험을 망치고 동방에 들어와 Beck의 loser를 듣 곤 했다. 이터널 선샤인을 몇 번이나 봤고 그녀에게 마지막 대사를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영화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여자의 다리 사이로 불빛이 빛나고 있었고 Flaming Lips는 그 불빛을 뚫고 무대로 나와 노래 하는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지만 너는 보았다고 한다. 잠은 병처럼 나의 시간을 좀먹었고 나는 자는 동안에 더 이상 벨소리를 듣지 못했다. 20번의 전화를 했었다. 추운 복도에서 나는, 나는, 불안에 휩싸였고 아침 해에 불 현듯 뭔가가 생각난 듯 집으로 돌아왔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을지로 4가 역에서 Boredoms의 음악을 듣다 어찌할 줄 몰랐고 추운 겨울 홍대 앞 언덕을 내려오며 Flaming Lips의 Soft bulletin을 들으며 환희를 경험하였 다. 이탈리아 마피아처럼 생긴 보컬은 오래전 마약을 팔았다 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불안했지만, 사람의 마음 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Robert Wyatt와는 또 다른 불안함이었다. 어느 여관에서 Department of Eagles의 음악을 들었다. 어느 방에서 Flaming Lips를 들었다. 2개의 아이팟에서 똑같은 음악을 찾아 하나 둘 셋 하며 각자의 아이팟을 재생시켰다. 집으로 가는 길 아이팟 이어폰 한 짝을 나누어 음악을 들었다. 집으로 가 는 길 나는 귀를 막고 음악을 들었다. 나는 왕십리에서 내려서 집으로 향했다. 친구들과 오락을 하다 전화를 내 려놨다. 전화기는 끊어지지 않았고 너는 나와 내 친구가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나와 내 친구는 2002년 봄, 상일동 주공 아파트 505동 404호 마루에 앉아서 위닝 일레븐을 하고 있었다. 2009년 11월 9일 집 으로 가는 길에 Dodos의 음악을 들었다.
방송국 프로에 Broken Social Scene이 출현하였다. 한 인터뷰에서 Kevin Drew는 모든 맴버가 같이 스튜디오 에 들어가 녹음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후지락에서 엄은 내게 BSS 여자 맴버의 얼굴을 찍어 내게 선물하였 다. 무대엔 맴버들로 가득 찼고 기타가 3명이었나 4명이었나, 5명이었나 드럼을 치던 맴버는 어디론가 뛰어갔 고 다시 뛰어 들어와 드럼을 쳤다. 좁은 방송국 스튜디오에는 10명의 맴버가 올라왔다. Jaga Jazzist를 좋아하 기 시작한 것은 군대 가기 전 2003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루에 반나절씩 솔식으로 음악을 다운 받을 때였 다. 운 좋게 나의 경험은 컴퓨터 앞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운 좋게 그들과 email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으며 그 들을 통해 노르웨이의 다른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인디 게임 평론을 하는 선배를 통해 한국 문화에 관 심이 많은 스웨덴 소년을 알게 되었고 그들 통해 노르웨이 CD를 구할 수 있었지만, 스웨덴의 음악에는 관심이 없었다. Thomas Dybdahl은 National Bank의 보컬이었다. Jaga의 맴버들은 다른 친구들과 프로젝트 그룹을 했고 야가와 내셔널 뱅크에서 키보드를 치던 Morten Qvenild는 Susanna and the magical orchestra를, 재즈
트리오인 In the country를 결성하였다. 14명이나 되던 야가 야지스트는 10명이 되었고 처음 재즈와 일렉트로 닉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 같던 음악에서 지금은 Rock-ish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특집 음감회를 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내 생각과 진행보다 빠르게 그들의 프로젝트들이 진행되었기에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가지 못했다. 813-2 버스에서 Burt와 Elvis Costello가 함께한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시근거렸고 Bill Frisell이 편곡한 Elvis Costello의 음악을 삼각지로 걸어가는 길에 너와 함께 따라 불렀었다. 따라라라 따 따, 따라따 따따라라. Elvis Costello는 Dybdahl에 대해 재능있는 싱어송라이터라고 말했다. 아워타운에 연진 의 Burt Bacharach 리메이크 앨범에 대해 열심히 깠었다. 그때는 홍대 인디를 까더라도 무서운 것이 없었다. Jimo는 Eureka에 Burt Bacharach의 노래를 카피했었다. 그것을 두고 헌정이라는 소리를 누군가 헛소리처럼 지껄였지만, 그는 단순히 가사 때문에 넣은 것이라고 어느 한 인터뷰에서 말하였다. 까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 니다. 까라면 깔 수 있다. 2008년 봄 어느 날 아침, 나는 효자동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았다. 김작가는 자신의 친 구와 함께 술을 먹으러 간 뒤였다. 까라면 까야 한다. 정부에서 소비된 미국산 쇠고기의 대부분은 전의경이 먹 었다.
우리는 지겹게 이야기했다. 사람의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고. 동방에 앉아서 닐 자자를 카피하던 선배는 여전 히 닐 자자를 카피하고 있을 것이다. 가능성은 싹이 피어올랐을 때 비로소 존재 여부를 따질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가능성이 없는 것이 맞고, 그것은 당신이 누구에게 기대하는 어떤 것과 같을 것이다. 네가 Bon Iver의 이 름을 꺼냈을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모든 것은 오해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 다고 믿었고 공고했던 취향이 무너지기에는 큰 믿음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택주 병장님, 일 단 여기 누워서 이야기합시다. 일단 믿으면 된다니까.” 순교자, 누군가는 나 그냥 윈도우 쓰련다라고 말했다. 나는 맥주를 따르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네가 기독교랑 다른 게 무엇인데?” 예수는 광야에서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악마의 유혹에 빵으로 믿음을 살 수 없다고 했지만, 나의 친구는 달콤한 빵에 신의 위대한 권능을 발 견하였고 영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담을 유혹한 것은 신의 대리인인 뱀이었다. 모세는 뱀으로 된 지팡이 를 들고 다녔다. 믿음, 믿음. 나의 믿음은 어디서 시작될까? 어리석은 대중을 단두대로 올리고 싶은 순진한 맹 신 말이다. 나의 믿음엔 근거가 있을까? 연극에선 모든 움직임에 이유가 있다고 했다. 나는 삶에 이유가 없다 고 했지만 그 이유란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의 이유로 수렴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롤랑 바르트는 ‘근사한’이란 단어를 썼다. 내게 너는 너무나 근사했다. 믿음은 권위의 인정에서 시작된다. 나는 어떤 권위를 받아들였나. 그 것은 엄의 권위일까, 피치폭의 권위일까, 새로운 예술의 권위일까? 너의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내가 Def Jux에서 나온 힙합을 듣든 말든 너는 왜 나를 무시했을까? 엄이 떠나고 나서 종종 그를 그리워하였다. 그 와 하이리를 찍은 사진을 flickr에 올렸다. 어느 순간부터 말을 정리해서 쓸 수 없었다. 의식은 순차적이지 않았 고 체계적이지 않았다. 많은 생략과 아집이 논리를 대체했고 나는 그저 생각나는 것을 순차적으로 적을 뿐이 었다. 맞춤법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비문이 문장을 불완전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쓴 말을 하나의 문 장으로 대체하고 싶다. 2009년 11월, 앞으로 음악감상회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오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Central Park In The Dark 8:04 Seiji Ozawa: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Ives: Symphony #2, Etc.
Happy Trails 10:33 Jim O’Rourke Bad Timing
Silver Trembling Hands 3:59 The Flaming Lips Embryonic
Flexen 3:28 Microstoria Model 3, Step 2
Anthems For A Seventeen-Year-Old Girl 4:36 Broken Social Scene You Forgot It In People
Hoy 4:32 Boredoms Pop Tatari
A Lovestory 3:00 Thomas Dybdahl One Day You’ll Dance For Me,
Higher Than The End 4:13 Twi The Humble Feather Babys 4:33 Bon Iver Blood Bank
In The Presence Of Fuckin God… We Are All The Same 11:15 Nash Kontroll Your Left Hand Just Expl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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