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은 달려간다. 모든 것들은 어느 순간에 본연의 얼굴을 드러낸다. 환상이 아닌 실체를 말이다. 달리는 전철에선 다시 그 안의 모든 것들이 달려간다. 키스를 하려는 커플, 자전거를 들고 탄 탈모가 진행 중인 북유럽인처럼 보이는 남자.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탐색을 한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서로 시선을 피하며 또 다른 가슴을 바라본다. 각 각의 개인은 하나의 패키지 안에서 동기화되어 전송된다. 칸 간의 문은 닫혀있다. 승객의 안전상의 이유로 다른 패키지로의 Shift는 불가능하다. 모두가 그들의 사연을 가지고 달린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자문한다. 답이란게 명확할리 없다. 옆에 사람에게 물어본다. 너는 왜 예수를 믿니. 그는 대답한다. 무엇이든 간에 어리석은 이유이다. 너는 내게 물어본다. 왜 나를 사랑하니? 대답은 정답이 되지 않는다. 티격태격하며 지하철을 기다리는 연인을 보며 너를 떠올린다. 동시에 낮에 식당에 왔던 할아버지와 청년을 떠올린다. 그들은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했다. 나는 왜 눈물을 글썽였던가. 아마도 그것은 내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시골집에서 도망치듯이 집으로 올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렸고 겁이 많았다. 나는 눈물이 많았다. 전철은 오지 않는다 너는 나보다 13시간이 빠른 삶을 살고 있다. 20분 동안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들은 어떤 것을 기다린다. 무엇이든 간에 올지 안올지 모른다. 믿음이라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분이 다시 온다는 약속은 2000년이 지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열차는 다시 왔다. 20분만의 재림이다. 열차가 들어오는 동안에 연인은 플렛폼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다. 나는 13시간 뒤에 도착할 예정이다. 너를 떠올렸다. 너와 함께 했던 순간을, 너의 향기를, 너의 살결을, 너의 날숨을. 열차는 다시 달린다. 약간의 수면 뒤 나는 다시 열차에 탈 것이다. 그리고 13 혹은 14시간 뒤에 다시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몸은 피곤하다. 정신은 피곤하다. 휴식이 필요하고 그와 비례하여 돈이 필요하다. 늦은 지하철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뉴욕의 지하철은 덥다. 집에 가는 길은 노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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